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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박하나의 세계 기념품 기행 - 제2화: 고도(古都)의 향기, 교토에서 만난 천년의 바람

by 빠워빠워 2025. 5.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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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imageFX

 

[2화] 고도(古都)의 향기, 교토에서 만난 천년의 바람

도쿄에서의 첫날밤, 하나는 침대 머리맡에 놓인 나무 마네키네코를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복주머니를 단 고양이는 어둠 속에서도 여전히 온화한 미소를 보내는 듯했다. “나의 첫 번째 행운, 고마워.” 작게 속삭인 하나는 다음 목적지를 고민했다. 1000만 원이라는 예산은 한정되어 있었기에, 한 도시에 너무 오래 머무를 수는 없었다.

‘일본의 다른 얼굴을 보고 싶어. 조금 더 전통적이고, 역사가 깊은 곳으로.’

그녀의 머릿속에 떠오른 곳은 바로 교토였다. 천년고도, 수많은 신사와 사찰, 그리고 섬세한 전통 공예품으로 유명한 도시. 도쿄가 현대적이고 활기찬 매력을 뽐낸다면, 교토는 차분하고 깊은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을 것 같았다.

다음 날 아침, 하나는 신칸센에 몸을 실었다. 빠르고 쾌적한 기차는 도쿄의 빌딩 숲을 순식간에 뒤로하고 일본의 다양한 풍경을 창밖으로 펼쳐 보였다. 작은 시골 마을, 푸른 논밭, 그리고 멀리 보이는 산자락까지. 그 모든 것이 하나에게는 신선한 자극이었다.

교토역에 내리자마진 도쿄와는 사뭇 다른 공기가 느껴졌다. 조금 더 느긋하고, 고풍스러운 분위기. 하나는 기온 거리에 숙소를 잡았다. 운이 좋으면 게이샤나 마이코를 볼 수도 있다는 말에 끌렸지만, 그녀의 진짜 목적은 따로 있었다. 바로 ‘교센스(京扇子)’라 불리는 교토의 전통 부채였다.

‘교토의 여름 햇살을 가려줄, 그리고 이곳의 이야기를 담은 부채를 찾고 싶어.’

기온 거리를 걷던 하나는 수많은 기념품 가게를 지나쳤다. 화려한 기모노 무늬의 부채, 유명 관광지가 그려진 부채들이 많았지만,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은 없었다. 너무 대량 생산된 느낌이거나, 혹은 지나치게 관광객을 겨냥한 듯한 디자인이었다.

“좀 더… 특별한 게 없을까?”

그녀는 스마트폰으로 검색해둔, 오래된 부채 전문점을 찾아 골목 안으로 발길을 옮겼다. 마치 시간이 멈춘 듯한 작은 가게. 문을 열고 들어서자 은은한 향냄새와 함께 수백 개의 부채가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가게 안쪽에서는 백발의 장인이 섬세한 손길로 부채 살에 종이를 붙이고 있었다.

“이랏샤이마세.”

장인은 작업하던 손을 잠시 멈추고 하나를 맞이했다. 그는 이 가게의 3대째 주인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하나는 교토의 이야기를 담은 특별한 부채를 찾고 있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장인은 잠시 생각하더니, 안쪽에서 상자 하나를 꺼내왔다. 상자 안에는 화려하진 않지만 기품이 느껴지는 부채들이 담겨 있었다.

“이것들은 일반적인 그림 부채와는 조금 다릅니다. 교토의 사계절 풍경이나 고전 시가에서 영감을 얻어, 전통 방식으로 그린 것들이지요. 대나무 살도 직접 깎아 만들고, 종이도 최고급 화지(和紙)를 사용합니다.”

하나의 눈길이 한 부채에 머물렀다. 짙푸른 색의 화지 위에 섬세한 금빛으로 그려진 것은 달밤의 대나무 숲이었다. 화려하진 않았지만, 보고 있으면 마음이 차분해지고 깊은 정취가 느껴지는 그림이었다. 마치 교토의 밤하늘 아래, 고요한 대나무 숲에서 불어오는 바람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이 그림에는 어떤 의미가 있나요?”

“달빛 아래 대나무는 예로부터 변치 않는 절개와 기상을 상징합니다. 또한, 이 그림은 ‘고요함 속에서 내면의 소리를 듣는다’는 선(禪)의 의미도 담고 있지요. 여행자에게는 스스로를 돌아보는 성찰의 시간을 선물할 수 있을 겁니다.”

장인의 설명은 하나의 마음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켰다. 단순히 예쁜 그림이 아니라, 철학적인 의미까지 담겨 있다니. 이것이야말로 그녀가 찾던 ‘이야기가 있는 기념품’이었다.

가격은 예상보다 조금 더 나갔지만, 하나는 망설이지 않았다. 이 부채는 단순한 물건이 아니라 교토의 정신, 그리고 장인의 혼이 담긴 예술 작품처럼 느껴졌다. 장인은 정성스럽게 부채를 오동나무 상자에 담아주며, “부디 이 부채가 아가씨의 여행에 좋은 바람을 불어넣어 주기를 바랍니다”라고 말했다.

숙소로 돌아온 하나는 도쿄에서 온 마네키네코 옆에 교토의 부채를 나란히 놓았다. 투박하고 따스한 느낌의 마네키네코와 섬세하고 기품 있는 교센스. 두 개의 기념품은 각기 다른 매력을 뽐내며 하나의 작은 컬렉션을 이루었다.

‘나무 고양이는 행운을, 이 부채는 성찰을… 다음엔 어떤 이야기가 나를 기다릴까?’

교토의 밤, 창밖으로 보이는 오래된 목조 가옥들의 지붕 위로 둥근 달이 떠 있었다. 하나는 부채를 살며시 펼쳐보았다. 마치 달빛 아래 대나무 숲에서 불어오는 듯한 시원한 바람이 그녀의 뺨을 스치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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